검은반도 - 1부 조용한 침투 (2화)

 제1부 조용한 침투

제1장 귀국하는 특파원

제2절 서울 정치부 복귀




인천공항에 내렸을 때, 서울의 공기는 워싱턴보다 무거웠다. 계절은 아직 겨울의 꼬리를 붙잡고 있었지만, 바람결에는 이미 먼지와 도로의 열기와 사람들의 조급함이 섞여 있었다. 자동문이 열릴 때마다 밀려드는 습한 실내 공기와 방송 안내음, 수하물 카트 바퀴 소리, 택시 기사들의 낮은 목소리가 한꺼번에 귀를 두드렸다. 송민희는 입국장 유리문을 빠져나오며 본능적으로 고개를 한 번 들었다. 천장이 높고 환한 공항인데도 이상하게 답답하게 느껴졌다. 워싱턴에서 출발하기 전까지는 귀국이 그저 일정의 종료처럼만 여겨졌는데, 막상 서울 땅을 밟고 나니 어떤 판 위로 다시 올라선 기분이 들었다.

휴대전화는 착륙 직후부터 쉬지 않고 울렸다. 부재중 전화 세 통, 메신저 알림 열일곱 개, 이메일 다섯 건. 그중 가장 위에 떠 있는 이름은 배철중이었다. 민희는 캐리어 손잡이를 잡은 채 잠시 화면을 바라보다가, 먼저 전화하지 않았다. 배철중은 기다리는 사람을 싫어하고, 자신을 기다리게 만드는 사람은 더 싫어한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민희는 출국장 바깥 공기 한 번 들이마신 뒤에야 전화를 걸었다.

“예, 국장님. 막 도착했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배철중의 목소리가 바로 튀어나왔다. “도착했으면 들어와야지. 오늘 오후에 정치부 회의 붙일 거야.”

“오늘 바로요?”

“그럼 내일이면 늦어. 선거철이야. 워싱턴 갔다 왔다고 국내 정치가 기다려 주나?”

그는 인사도, 수고했다는 말도 없이 본론부터 꺼냈다. 그것이 배철중다운 방식이었다. “장천길 라인부터 봐. 요즘 그 사람 주변이 조용히 시끄러워.”

민희는 순간 웃음이 날 뻔했다. 조용히 시끄럽다. 배철중이 쓰는 모순된 표현들 속에는 대개 냄새가 있었다. 겉으론 드러나지 않지만, 기자들이 달려들면 뭔가 건질 게 있다는 뜻이었다.

“왜 하필 장천길입니까?”

“네가 그런 걸 묻는 사람은 아니잖아.”

배철중은 말을 돌리지 않았다. “당 안에서 뜨는 놈이면서도 당 안에서 싫어하는 사람이 많아. 대통민정당 쪽에서 물어뜯을 명분도 있고, 자유우국당 안에서도 반기는 사람이 별로 없어. 딱 기삿감이지.”

민희는 캐리어를 끌며 천천히 걸었다. 출국장 바깥의 사람들은 누군가를 반기거나, 누군가를 재촉하거나, 누군가를 기다리다 지친 얼굴들이었다. 그 사이를 지나며 그녀는 낮게 물었다.

“국장님은 장천길이 어디까지 간다고 보세요?”

배철중은 코웃음을 쳤다. “정치는 될 놈이 되는 게 아니라, 안 죽는 놈이 되는 거야. 걔가 그쪽인지는 더 봐야지.”

그 말은 워싱턴에서 켈러가 했던 표현과 묘하게 겹쳤다. 누가 당선되느냐보다, 누가 상처 입은 채 살아남느냐가 중요하다고 했었다. 민희는 순간 가방 안쪽 포켓에 넣어 둔 명함의 존재를 의식했다.

“두 시간 뒤 회의실.”

배철중은 일방적으로 말을 끊었다.

민희는 잠시 휴대전화를 내려다보다 택시 승강장으로 향했다. 공항도로를 타고 서울로 들어가는 동안 창밖의 풍경은 빠르게 바뀌었다. 겨울 들판의 누런 빛, 공장지대의 낮은 건물들, 강변북로의 회색 차벽, 한강 위를 미끄러지는 흐린 햇빛. 도시가 가까워질수록 광고판과 아파트 단지가 촘촘해졌다. 서울은 여전히 크고 바빴고, 워싱턴보다 훨씬 더 노골적으로 욕망을 드러내는 도시였다. 이곳에서 정치는 고상한 연설이 아니라 건물과 건물 사이의 눈빛으로 움직였고, 뉴스는 사실보다 타이밍으로 살아남았다.

차가 여의도 쪽으로 접어들 무렵 민희는 가방에서 수첩을 꺼냈다. 워싱턴에서 받은 명함을 다시 펼쳐 보았다.

장천길 백야 사슴눈

단어들은 여전히 무의미한 배열처럼 보였지만, 서울로 돌아온 뒤에는 그 무의미함 자체가 더 인공적으로 느껴졌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맥락을 잘라 낸 채 던져 놓은 조각 같았다. 기자는 조각을 보면 완성된 그림을 상상하게 된다. 그리고 좋은 기자일수록, 때로는 그 상상을 의심하는 법도 알아야 한다.

회사 건물은 여의도 한복판에 있었다. 오래된 언론사 특유의 냄새가 현관에서부터 났다. 오래 쓴 난방기, 복사기 토너, 젖은 코트, 종이와 커피가 뒤섞인 냄새. 민희는 캐리어를 국제부 책상 옆에 세워 두고 코트를 벗었다. 기자 몇 명이 다가와 귀국 인사를 건넸다. 누구는 반가워했고, 누구는 워싱턴에서 뭘 보고 왔느냐며 떠보았고, 누구는 장난처럼 “이제 진짜 정치판에 들어오시네요”라고 말했다.

그 말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은 것은, 이미 이곳의 공기 자체가 바뀌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곳곳에 붙은 선거 일정표, 벽면 TV에서 흘러나오는 시사토론, 후보 지지율 그래프, 여론조사 해설, 속보 자막. 언론사는 선거를 보도하는 곳이기도 했지만, 선거의 열기를 먹고 사는 곳이기도 했다.

정치부 회의실에는 배철중이 이미 앉아 있었다. 그는 넥타이를 느슨하게 맨 채 책상 위에 서류철과 태블릿을 펼쳐 놓고 있었다. 쉰을 넘긴 얼굴에는 피로가 깊게 배어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여전히 번들거렸다. 그의 시선은 늘 사람을 평가하고 있었다. 누가 쓸모 있는지, 누가 더 이상 쓸모 없는지.

“왔어?”

민희가 자리에 앉자 배철중은 다른 기자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이번 총선은 두 가지로 간다. 겉으로는 민생이니 심판론이니 하겠지. 그런데 속은 다르다. 자유우국당은 차기 주자 싸움이 이미 시작됐고, 대통민정당은 내부 계파 정리가 아직 안 끝났어. 참의당은 숫자는 작아도 프레임은 잘 건드린다. 결국 이번 선거는 다음 판 사람을 정하는 선거야.”


민희는 그의 말을 듣는 척하며 회의실 안 사람들의 표정을 읽었다. 몇몇은 고개를 끄덕였고, 몇몇은 이미 자기 취재원 이름을 떠올리는 표정이었다. 선거철 기자들은 군인과 비슷해진다. 배치와 속도, 기습과 방어를 생각한다는 점에서.

배철중은 태블릿 화면을 돌려 보였다. 자유우국당 인물들의 사진과 간단한 이력이 정리돼 있었다. 그중 장천길 사진이 화면 한가운데 크게 떴다. 짙은 남색 넥타이, 눌러 쓴 미소, 약간 들어간 눈매. 민희는 사진 속 얼굴을 보는 순간, 워싱턴 택시 안에서 펼쳐 보았던 명함의 첫 줄이 다시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장천길.” 배철중이 사진을 손가락으로 톡 건드렸다. “겉보기엔 무난해 보여. 2선, 정책통 이미지, 과거 운동권, 지금은 자유우국당. 그런데 이런 인물들이 제일 재미있어. 어느 진영에서도 100퍼센트 믿지 못하거든.”

한 후배 기자가 물었다. “국장님, 장천길이 진짜 차기 대선급입니까?”

배철중은 단호하게 말했다. “대선급인지는 아무도 몰라. 다만 대선급이 될까 봐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벌써 많다는 게 중요하지.”

민희는 그 한마디를 수첩에 적어 두었다. 정치에서 실력보다 먼저 움직이는 것은 종종 타인의 불안이었다.

회의가 끝난 뒤 배철중은 민희를 따로 불렀다. 국장실 문이 닫히자 그는 방금 전 회의 때보다 한층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워싱턴 쪽에서 뭐 들은 거 없어?”

“뭘요?”

“네가 돌아오는 타이밍이 좋아. 장천길 쪽도 그렇고, 대통민정당 외곽도 그렇고, 미국 애들이 은근히 촉 세우는 분위기가 있더라고.”

민희는 무심한 표정을 유지했다. “미국이 한국 선거에 관심 없는 적이 있었나요?”

“그 말이 아니라.”

배철중은 책상에 놓인 펜을 굴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가끔은 누가 먼저 냄새를 맡는지가 중요하지. 넌 그 냄새 맡는 감각이 있는 편이고.”

칭찬 같았지만 경계이기도 했다. 배철중은 유능한 기자를 좋아했지만,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유능함은 싫어했다.

“장천길 관련해서 뭐든 작든 크든 이상한 게 있으면 바로 나한테 먼저 가져와.”

“특종을 국장님부터 검수받으라는 말로 들리네요.”

배철중은 얇게 웃었다. “특종은 혼자 갖고 있으면 독이 돼.”

민희는 그 말을 흘려들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국장실에서 나와 복도 끝 창가에 섰을 때, 비로소 한숨이 나왔다. 워싱턴에서 들은 말, 명함에 적힌 세 단어, 그리고 서울에 돌아오자마자 모든 화살표가 장천길 쪽을 가리키는 이 우연. 그녀는 우연을 완전히 믿지 않았다. 특히 정치판에서는 더 그랬다.

오후 늦게, 그녀는 자유우국당 출입기자 출신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배는 현직을 떠나 지금은 시사평론을 하고 있었지만, 당내 분위기에 밝은 편이었다.

“장천길 어때요?”

수화기 너머로 선배가 웃었다. “갑자기 그 사람은 왜?”

“국장님이 보라네요.”

“보라는 사람은 다 이유가 있지.”

선배는 잠시 뜸을 들였다. “겉으로는 멀쩡해. 말도 점잖고, 정책도 알고, 캠프 관리도 무난해. 근데 당에서 이상하게 미운털이 박힌 데가 있어.”

“왜요?”

“젊을 때 운동권이었다는 것도 있고, 자유우국당치곤 너무 자기 색을 감춘다는 불안감도 있고. 그리고…”

“그리고?”

“가끔 설명 안 되는 줄이 닿아 있다는 말이 돌아.”

민희는 펜 끝을 멈췄다. “무슨 줄이요?”

“그걸 알면 내가 국회의원 하지, 평론 하겠냐?” 선배가 웃더니 덧붙였다. “예전 러시아 쪽 얘기도 있고, 중국 쪽 행사에 얼굴 비친 적도 있고. 근데 딱 걸리는 건 없어. 그래서 더 찝찝하지.”

전화가 끝난 뒤 민희는 메모를 정리했다. 설명 안 되는 줄. 러시아 쪽 얘기. 중국 행사. 운동권 출신 보수 의원. 하나하나 떼어 놓고 보면 흔한 정치권 소문이었다. 하지만 워싱턴에서 받은 세 단어와 겹쳐 놓자 이상하게 모양이 생겼다. 아직 이름 없는 그림자의 윤곽처럼.

저녁 무렵 민희는 구내식당 대신 회사 근처 카페로 내려갔다. 피곤이 몰려왔지만 머리는 오히려 선명했다. 커피를 받아 창가 자리에 앉았을 때,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송 과장님?”

민희가 고개를 들자 낯선 남자가 서 있었다. 서른 살 안팎, 마른 체격, 짧게 다듬은 머리, 지나치게 평범해서 오히려 눈에 안 남을 얼굴. 그는 회사 직원처럼 보이지도 않았고, 정치인 보좌진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누구시죠?”

남자는 대답 대신 명함을 내밀었다. 아무 기관명도 직함도 없는, 이름만 인쇄된 명함이었다. 이름은 ‘차휘’였다.

민희는 명함과 남자를 번갈아 보았다. “무슨 일이시죠?”

“장천길 의원 취재하신다길래.”

그는 주변을 한 번 훑어보더니 민희 맞은편 의자를 가볍게 당겼다. 허락을 구하는 것 같으면서도 이미 앉을 준비가 된 동작이었다.

“앉아도 됩니까?”

민희는 곧바로 허락하지 않았다. “제가 그걸 왜 대답해야 하죠?”

남자는 잠시 정색하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워싱턴에서 돌아오셨죠.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장천길 의원 이름을 들으셨다면 조심하시는 게 좋습니다.”

순간 민희의 손끝이 식었다. 그녀는 표정을 바꾸지 않으려 애썼다.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네요.”

“모르시는 편이 나을 수도 있습니다.”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결국 앉지 않았다. 대신 품에서 작은 종이 한 장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 두었다. 접혀 있는 메모지였다.

“읽어 보시고, 버리십시오.”

“당신 누구예요?”

이번에는 남자가 아주 짧게 웃었다. “그 질문엔 아직 답할 수 없습니다.”

그는 그대로 몸을 돌려 카페를 나갔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쫓아갈 틈도 없었다. 민희는 몇 초 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창밖으로 보니 남자는 횡단보도를 건너 군중 속으로 금세 섞여 버렸다.

그녀는 천천히 메모지를 펼쳤다.

‘장천길을 먼저 의심하지 마십시오.

그를 의심하게 만드는 사람이 누구인지부터 보십시오.’

메모 아래에는 짧은 문장이 하나 더 적혀 있었다.

‘사슴눈을 찾으려 하지 말고, 사슴눈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보십시오.’

민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워싱턴 명함의 마지막 단어가 다시 살아난 듯했다. 사슴눈. 그것이 사람인지, 코드명인지, 조직명인지조차 알 수 없었는데, 서울에 오자마자 다시 같은 단어가 나타났다. 게다가 이번에는 누군가 자신이 그 단어의 존재를 알고 있음을 전제한 듯한 말투를 쓰고 있었다.


그녀는 무의식중에 카페 안을 둘러보았다. 평범한 직장인들, 노트북을 펴 놓은 대학생, 전화를 받는 회사원, 조용히 컵을 닦는 직원. 누구 하나 특별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민희는 처음으로 확실히 느꼈다. 자신은 이제 단순히 정치인 하나를 취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는 자신이 장천길을 취재하기를 원했고, 누군가는 자신이 장천길을 잘못 의심하기를 원했으며, 또 누군가는 그 두 방향을 모두 알고 있는 채 어딘가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는 메모를 접어 수첩 뒤편에 끼워 넣었다. 워싱턴에서 받은 명함과 같은 자리에.

그날 밤 퇴근길, 여의도 강변 도로 위로 어둠이 빨리 내려앉았다. 차창 밖 한강은 검게 잠겨 있었고, 다리 위 조명은 물 위에서 부서졌다. 민희는 뒷좌석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피곤했지만 잠들고 싶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두 장의 종이가 나란히 떠 있었다. 하나는 워싱턴의 명함. 다른 하나는 서울 카페의 메모.

장천길.

백야.

사슴눈.

장천길을 먼저 의심하지 마십시오.

사슴눈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보십시오.

이 모든 말들이 하나의 방향을 가리키는지, 아니면 서로 다른 손들이 서로 다른 목적을 위해 던진 미끼인지 아직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서울에 돌아온 첫날부터 이미 누군가가 먼저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은 생각보다 훨씬 빨리 그 움직임 한가운데로 들어와 버렸다.

택시가 신호에 멈춰 섰을 때, 민희는 창문 너머로 자유우국당 중앙당사 건물을 잠시 바라보았다. 불이 켜진 창문들이 바둑판처럼 늘어서 있었다. 그 안 어딘가에 장천길의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그 밖 어딘가에는 장천길을 무너뜨리려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같은 건물 안에, 같은 층 안에, 같은 방 안에 둘 다 있을 수도 있었다.

민희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워싱턴을 떠나기 전에는 이 취재가 그저 큰 정치기사 한 편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아니었다. 이것은 하나의 이름을 파고드는 취재가 아니라, 이름 주변에 모여드는 그림자들의 방향을 읽는 일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림자는 늘, 빛보다 먼저 움직이지 않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