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반도 - 1부 조용한 침투 (19화)

제1부 조용한 침투

제10장 총선의 밤

제1절 상처 입은 당선



투표가 시작된 아침, 장천길은 가장 먼저 학교 운동장 냄새를 맡았다.

그의 지역구 제3투표소는 오래된 초등학교 강당이었다. 강당으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밤새 내린 가랑비가 얇게 남아 있었고, 젖은 흙과 오래된 나무, 아이들이 쓰다 남긴 분필 냄새가 희미하게 섞여 있었다. 선거운동 기간 내내 수십 번도 더 지나친 골목이었지만, 그날 아침의 골목은 다르게 보였다. 현수막은 바람에 젖어 힘없이 처졌고, 담벼락에는 아직 뜯지 못한 선거 벽보들이 축축하게 붙어 있었다. 사진 속 후보들은 하나같이 웃고 있었지만, 젖은 종이 위의 웃음은 이상하게 애처로워 보였다.

장천길은 수행비서와 지명길, 노민지를 뒤에 두고 투표소 안으로 들어갔다. 방송 카메라 몇 대가 따라붙었고, 지역지 기자 둘이 입구 옆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카메라는 그가 투표용지를 받아 기표소로 들어가는 순간까지 좇았다. 선거 때 정치인은 사적인 사람이 될 수 없었다. 투표라는 가장 개인적인 행위조차도 카메라 앞에서는 메시지가 되었다. 장천길은 커튼 안에 홀로 섰을 때 잠시 눈을 감았다. 얇은 종이 위에 인쇄된 이름들, 네모난 칸들, 플라스틱 기표 도장의 감촉. 아무것도 특별하지 않은 절차였는데 손끝이 무거웠다.

그는 자신의 이름 옆 칸에 도장을 찍었다.

둥근 붉은 자국이 종이 위에 남는 순간, 이상하게도 승리의 감각은 오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어떤 문서에 서명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것이 당선의 계약인지, 몰락의 계약인지 아직 알 수 없었다.

투표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기자들이 질문을 던졌다.

“의원님, 오늘 결과 어떻게 예상하십니까?”

“마지막까지 주민들의 판단을 기다리겠습니다.”

“강윤호 씨 관련 의혹에 대해서는 다시 입장을 내실 계획이십니까?”

그 이름이 나오자 지명길이 먼저 기자 쪽을 쳐다봤다. 노민지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다. 장천길은 아주 짧게 숨을 들이마셨다. 강윤호. 선거운동 막판 일주일 동안 그의 이름은 장천길의 이름보다 더 자주 검색되었다.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도 분명하지 않은 사람. 누군가에게는 민주화 운동의 실종자였고, 누군가에게는 러시아 극동의 어두운 거래를 증명할 열쇠였으며, 장천길에게는 오래전 자신이 끝내 배웅하지 못한 젊은 얼굴이었다.

“그 문제는 선거가 끝난 뒤 차분히 설명드리겠습니다.”

장천길은 그렇게 말하고 더 대답하지 않았다. 카메라 플래시가 몇 번 터졌다. 기자들은 더 캐묻고 싶어 했지만, 선거 당일 투표소 앞에서 지나치게 몰아붙이는 모양새를 피하려는 듯 물러섰다. 장천길은 운동장을 빠져나오며 젖은 벽보를 다시 보았다. 대통민정당 후보의 사진, 자유우국당 다른 후보들의 작은 응원 문구, 참의당 후보의 노동 공약 문구가 한 줄로 붙어 있었다. 대한민국의 정당들은 늘 서로 다른 언어를 썼지만, 선거 마지막 날이 되면 모두 같은 표정을 지었다. 웃고 있지만 두려워하는 얼굴.

차에 오르기 전, 노민지가 낮게 말했다.

“오늘은 강윤호 질문에 더 답하지 않는 게 맞습니다.”

“알고 있어.”

“출구조사 전까지는 움직이지 말아야 합니다. 상대가 마지막 프레임을 준비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명길이 끼어들었다.

“상대가 아니라 누군가겠죠.”

노민지가 그를 흘끗 봤다.

“그게 지금 무슨 차이가 있나요?”

“차이가 있습니다. 상대 후보가 한 일과, 누군가가 선거판 전체를 갖고 노는 일은 다르니까요.”

장천길은 두 사람의 말을 들으며 차창 밖을 보았다. 선거운동 내내 그들은 같은 방에서 일했지만, 이미 다른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지명길은 장천길을 구하려 했고, 노민지는 장천길을 살릴 수 있는 계산을 구하려 했다. 둘은 닮은 듯 달랐다. 둘 다 충성스러웠지만, 충성의 방식이 달랐다. 지명길은 사람이 먼저라고 믿었고, 노민지는 살아남는 구조가 먼저라고 믿었다. 그 차이가 언제든 서로를 향한 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장천길은 알고 있었다.

오전 내내 의원실에는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 선거사무소는 투표율 추이를 표시한 화면과 현장 보고, 방송사 속보, 온라인 커뮤니티 반응으로 가득 찼다. 자원봉사자들은 김밥과 종이컵 커피로 아침을 때웠고, 지역 조직 담당자는 투표 독려 전화 목록을 들고 목이 쉬도록 사람들을 불렀다. 모든 것이 합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졌고, 그래서 더 피로했다. 불법이 아닌 방식으로도 사람은 충분히 조작될 수 있었다. 질문의 순서를 바꾸고, 분노할 단어를 앞에 놓고, 의심할 얼굴을 반복해서 보여 주는 것만으로도 여론은 천천히 기울었다.

송민희는 그 장면을 회사 정치부 모니터 앞에서 보고 있었다. 방송 화면에는 투표소 앞의 장천길이 반복 재생되었다. 자막은 그의 이름 뒤에 ‘강윤호 의혹’, ‘백야 문건’, ‘후원회 수사’ 같은 말을 붙였다. 단어들은 뉴스 편집자의 손을 거치며 점점 더 자연스러운 한 덩어리가 되어 갔다. 장천길이라는 이름만 나오면 강윤호가 붙고, 강윤호가 나오면 백야가 붙고, 백야가 나오면 후원회 의혹이 붙었다. 사실관계의 순서와 중요도는 흐려지고, 연상만 남았다.

민희는 자신이 쓴 첫 기사 원문을 다시 열어 보았다. 원문에는 ‘백야’라는 단어가 없었다. ‘동부선’이라는 표현도 없었다. 강윤호라는 이름도 배경 설명의 한 문장에 불과했다. 그러나 출고된 기사에는 그 단어들이 들어갔고, 다음 날 방송에는 그것들이 프레임이 되었으며, 이제 선거 당일 자막에는 한 사람을 규정하는 낙인이 되어 있었다. 기자는 언제부터 자신의 문장에 대해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가. 편집자가 바꿨으니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가. 자료를 누가 흘렸는지 몰랐으니 죄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배철중은 그녀의 뒤에서 말했다.

“너무 심각하게 보지 마.”

민희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제가 쓴 것보다 훨씬 멀리 갔습니다.”

“기사는 원래 기자가 쓴 순간 기자 손을 떠나. 정치권이 쓰고, 방송이 쓰고, 시청자가 쓰지.”

“그럼 기자는 왜 쓰죠?”

배철중은 대답 대신 웃었다.

“그 질문은 신입 때 해야지. 워싱턴까지 다녀온 사람이 이제 와서 하면 좀 늦었고.”

민희는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화면 아래쪽에는 권유라가 출연하는 저녁 개표 특집 예고가 흘렀다. 권유라의 얼굴은 언제나처럼 단정했고, 눈빛은 확신에 차 있었다. 그녀는 확신을 파는 사람이었다. 정보가 아니라 방향을 팔았다. 사람들은 사실보다 방향을 더 쉽게 믿었다.

같은 시각, 국정원 지하 연락분석실에서는 이철규가 선거 관련 공개 자료와 비공개 감시 자료를 나란히 띄워 놓고 있었다. 선거 자체는 그들의 영역이 아니었다. 투표와 개표는 중앙선관위와 경찰, 각 정당 참관인의 세계였다. 그러나 선거를 둘러싼 정보 흐름은 달랐다. 해외 계정에서 시작된 해시태그, 국내 커뮤니티로 옮겨진 이미지, 특정 언론사 보도 직후 동시에 올라온 댓글 패턴, 여론조사 문항 설계와 기사 제목의 반복 구조. 이 모든 것은 정보기관이 봐야 하는 영역과 닿아 있었다.

차휘는 옆자리에서 모니터를 넘겨 보며 중얼거렸다.

“투표함을 건드린 건 아니네요.”

“그럴 필요가 없었을 거야.” 이철규가 말했다.

“사람 머릿속을 먼저 건드렸으니까요?”

이철규는 대답하지 않았다. 차휘의 말은 거칠었지만 틀리지 않았다. 해연망이 원한 것은 표의 숫자를 직접 바꾸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위험하고, 들키기 쉬우며, 성공해도 판을 오래 끌고 갈 수 없었다. 더 좋은 방식은 후보를 상처 입히는 것이었다. 낙선시키지 않고, 당선되더라도 흠집 난 상태로 살아남게 하는 것. 의혹을 완전히 입증하지 않고, 해명해도 사라지지 않는 그림자를 붙이는 것. 그러면 그 정치인은 앞으로 어느 회의장에 들어가도 등 뒤에 보이지 않는 빚을 지고 앉게 된다.

이철규는 워싱턴에서 넘어온 켈러 관련 외교 접촉 기록을 떠올렸다. “상처 입은 생존자.” 처음에는 외교가의 추상적인 표현처럼 보였던 말이 이제는 작전 용어처럼 들렸다.

“팀장님.” 차휘가 화면 하나를 확대했다. “이거 보십시오.”

장천길 관련 검색어 그래프였다. 오후 두 시를 기점으로 ‘장천길 당선 가능성’보다 ‘장천길 수사 가능성’이 더 빠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개표도 시작되지 않았는데, 사람들은 이미 당선 이후의 수사를 검색하고 있었다. 더 이상 선거의 질문은 ‘누가 이기는가’가 아니었다. ‘이겨도 무사할 수 있는가’였다.

이철규는 입술을 다물었다.

그때 탁강래가 뒤쪽에서 나타났다. 그는 언제나 소리 없이 다가왔다. 회색 양복 위에 어두운 코트를 걸친 채 모니터를 내려다보던 그는 별다른 감정을 보이지 않았다.

“재미있는 밤이군.”

차휘는 못마땅한 얼굴로 고개만 숙였다. 이철규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재미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선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선거철엔 원래 그렇다.”

“해외발 계정과 국내 여론조사 데이터랩, 그리고 문석표 쪽 수사 움직임이 같은 방향으로 맞물려 있습니다.”

탁강래는 한참 동안 화면을 바라보다 말했다. “공식 보고서엔 선거 개입이라는 표현 쓰지 마라.”

“그러면 뭐라고 써야 합니까?”

“사회 이슈 증폭 관찰.”

차휘가 낮게 웃었다. “말장난 아닙니까?”

탁강래의 시선이 차휘에게 향했다. “말장난이 국가를 살릴 때도 있다.”

“그리고 진실을 죽일 때도 있죠.”

순간 공기가 식었다. 이철규는 차휘를 제지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탁강래는 화를 내지 않았다. 그게 더 불편했다.

“설인.”

“예.”

“현장은 말보다 늦게 움직이는 사람이 살아남는다. 네가 그걸 못 배우면, 언젠가 말보다 먼저 죽는다.”

차휘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눈은 숙이지 않았다.

오후 여섯 시, 투표가 끝났다.


방송사들은 일제히 출구조사 카운트다운을 띄웠다. 선거사무소의 공기는 그 순간부터 전혀 다른 성질로 변했다. 낮 동안의 소음은 줄어들고, 사람들은 모니터와 휴대전화를 동시에 보며 숨을 죽였다. 벽시계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장천길은 사무소 안쪽 작은 방에 앉아 있었다. 옆에는 지명길과 노민지, 지역 선대본부장, 법률팀장이 있었다. 누구도 큰소리로 말하지 않았다. 웃는 사람도 없었다.

노민지의 태블릿에는 세 종류의 예측 자료가 열려 있었다. 방송사 출구조사 예측, 자체 전화면접 추적조사, 그리고 지명길이 확보한 비공식 지역 투표율 분석. 세 자료는 서로 다른 결론을 내고 있었다. 방송사는 장천길의 근소 열세를 예측했고, 자체 조사는 박빙 우세를 말했으며, 지역 투표율 분석은 막판 고령층 투표율 상승을 근거로 장천길이 살아남을 가능성을 가리켰다.

“어느 쪽이 맞아?” 장천길이 물었다.

노민지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방송사는 흐름을 봅니다. 우리는 바닥을 봅니다.”

“그래서?”

“바닥이 아직 의원님을 버리진 않았습니다.”

지명길이 덧붙였다. “다만 이겨도 상처가 큽니다.”

장천길은 조용히 웃었다. “그건 이미 알고 있어.”

정확히 오후 여섯 시 정각, 방송 화면이 바뀌었다. 음악이 올라갔고, 앵커들의 목소리가 긴장된 활기를 띠었다. 전국 지도 위로 정당별 예상 의석수가 떠올랐다. 자유우국당은 예상보다 부진했다. 대통민정당은 수도권에서 약진했고, 참의당은 의석은 적었지만 몇몇 접전 지역에서 의미 있는 득표율을 기록했다. 패널들은 민심의 경고, 정권 견제, 보수 재편, 진보 연합 같은 단어들을 빠르게 던졌다.

그리고 장천길의 지역구가 화면에 떴다.


장천길 43.8.

대통민정당 후보 44.6.

참의당 후보 7.1.

기타 4.5.

예상 2위. 오차범위 내 열세.


사무소 안에서 낮은 탄식이 흘렀다. 누군가는 욕을 삼켰고, 누군가는 휴대전화로 지역 조직에 전화를 걸었다. 노민지는 표정을 굳힌 채 숫자를 다시 계산했다. 지명길은 장천길의 얼굴을 봤다. 장천길은 화면을 보고 있었지만, 눈빛은 이상하게 차분했다.

“오차범위 안입니다.” 노민지가 말했다.

“그래.”

“실제 개표와 다를 수 있습니다.”

“알아.”

그런데도 분위기는 이미 패배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출구조사는 숫자일 뿐이지만, 사람들의 마음에는 결과처럼 박힌다. 선거사무소의 자원봉사자 몇 명은 억지로 박수를 쳤고, 지역 선대본부장은 방송사별 세부 예측을 확인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방 안 깊은 곳에는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 있었다. 이 선거에서 장천길은 이미 한 번 졌다. 설령 개표에서 살아남더라도, 그는 선거운동 이전의 장천길로 돌아갈 수 없었다.

송민희는 방송국 개표 스튜디오 한쪽에서 그 숫자를 봤다. 그녀는 현장 연결 해설을 위해 불려와 있었고, 배철중은 본사 상황실에서 그녀에게 계속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 장천길 지역구 코멘트 준비.

— 변절자 프레임 직접 언급은 피하고 ‘정체성 논란’으로 돌려.

— 강윤호는 이름만 짧게.


민희는 휴대전화를 뒤집어 놓았다. 스튜디오 안에서 권유라가 웃으며 말했다.

“장천길 후보의 경우 단순히 한 지역구의 승패로 보기 어렵습니다. 이분은 보수정당 안에 있으면서도 과거 진보운동의 그림자를 갖고 있고, 최근엔 외교안보 라인과 관련된 여러 의혹이 제기됐죠. 유권자들이 결국 ‘이 사람을 믿어도 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것으로 보입니다.”

믿어도 되는가. 얼마나 편리한 문장인가. 사실을 증명하지 않고도 사람을 법정에 세울 수 있는 문장. 민희는 자신의 차례가 오자 천천히 말했다.

“다만 아직 오차범위 안입니다. 그리고 장천길 후보를 둘러싼 의혹 중 상당수는 검증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늘의 결과가 무엇이든, 이 선거는 누군가의 과거가 어떻게 현재의 정치적 무기가 되는지 보여 주는 사례로 남을 가능성이 큽니다.”

권유라가 그녀를 힐끗 봤다. 웃고 있었지만 눈은 웃지 않았다.

“검증이 끝나지 않았다는 말은, 검증해야 할 의혹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죠.”



민희는 대답하지 않았다. 방송 카메라 앞에서 논쟁을 시작하면 그 자체가 권유라가 원하는 그림이 될 것이다.

밤이 깊어지면서 개표율은 천천히 올라갔다. 처음에는 대통민정당 후보가 앞섰다. 장천길 사무소의 공기는 무거웠다. 외곽 동네의 개표함이 먼저 열렸고, 그 지역은 장천길에게 불리했다. 방송 화면은 그의 이름을 붉은색 하락 화살표와 함께 띄웠다. 온라인에서는 ‘장천길 낙선’, ‘변절자의 최후’, ‘백야의 밤 끝났다’ 같은 문구가 빠르게 퍼졌다.

그러나 자정이 가까워지자 흐름이 바뀌었다. 오래된 주택가와 아파트 밀집 지역의 개표가 시작되면서 격차가 줄었다. 장천길은 천 표 차, 칠백 표 차, 사백 표 차까지 따라붙었다. 선거사무소 안의 사람들은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다. 그러나 누구도 크게 환호하지 않았다. 너무 많이 다쳤기 때문이었다. 살아날 수도 있다는 희망조차 조심스러웠다.

노민지는 손톱으로 태블릿 가장자리를 두드리고 있었다. 평소 그녀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지명길은 그 모습을 보다가 낮게 말했다.

“무섭습니까?”

노민지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무서운 게 아니라 계산하는 중이에요.”

“계산이 틀리면요?”

“그럼 다른 계산을 해야죠.”

“사람은 계산식이 아닙니다.”

그제야 노민지가 그를 봤다. “그래서 정치에서 사람들이 제일 먼저 버려지는 겁니다. 계산식이 아니니까.”

지명길은 더 말하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에 오래전부터 쌓인 균열이 그날 밤 더 깊어졌다. 장천길은 그 대화를 들은 듯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 이름 옆의 숫자만 바라보고 있었다.


개표율 82퍼센트. 격차 121표.

개표율 87퍼센트. 장천길 역전. 214표 차.


사무소 안에서 첫 번째 환호가 터졌다. 누군가 박수를 쳤고, 누군가 울먹였다. 지역 조직 담당자는 “아직입니다, 아직!”이라고 외쳤지만 목소리에는 이미 떨림이 섞여 있었다. 장천길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화면을 바라보며 천천히 물을 마셨다. 손이 아주 조금 떨렸다.

국정원 연락분석실에서도 같은 숫자가 떠 있었다. 차휘가 말했다.

“살아났네요.”

이철규는 대답하지 않았다.

“기뻐해야 합니까?” 차휘가 물었다.

“누구 입장에서?”

차휘는 입을 다물었다.

이철규는 다른 화면을 보고 있었다. 장천길의 역전 순간, 해외발 계정 몇 개가 동시에 문장을 올렸다가 삭제했다. 문장은 모두 같았다.


The wounded one survived.


상처 입은 자가 살아남았다.

이철규는 그 문장을 복사해 별도 파일에 저장했다. 그러고는 옆에 시간과 계정 경로, 최초 게시 서버의 위치를 적었다. 경로는 세 번 우회되어 있었지만, 하나는 대만의 상업 서버를 거쳐 도쿄로, 다른 하나는 홍콩을 거쳐 싱가포르로, 또 하나는 러시아 극동 지역의 오래된 호스팅 업체를 지나고 있었다. 너무 많은 방향이 한 문장에 묶여 있었다. 우연처럼 보이도록 설계된 흔적이었다.

“팀장님.” 차휘가 다시 말했다. “이거… 누가 당선 축하한 겁니까?”

“아니.” 이철규가 말했다. “확인한 거야.”

“뭘요?”

“목표가 살아남았는지.”

새벽 한 시 삼십칠 분, 방송사들은 장천길의 당선 유력을 띄웠다. 선거사무소 안에서 환호가 터졌다. 꽃다발이 준비됐고, 지역 당원들이 몰려들었다. 자유우국당 로고가 박힌 점퍼를 입은 사람들은 서로를 끌어안고 사진을 찍었다. 누군가는 장천길을 향해 “의원님, 이겼습니다!”라고 외쳤다. 그러나 장천길은 웃음을 짓기까지 몇 초가 걸렸다.

그는 결국 웃었다. 정치인은 이긴 밤에는 웃어야 한다. 상처가 깊어도, 의혹이 남아도, 내일 아침 검찰이든 경찰이든 무엇이 기다려도, 카메라 앞에서는 먼저 웃어야 한다. 웃지 않으면 사람들은 패배의 냄새를 맡는다. 장천길은 꽃다발을 받아 들고 지지자들 앞에 섰다. 박수와 환호, 플래시가 쏟아졌다.

“주민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그의 목소리는 조금 잠겨 있었다. “오늘의 결과는 저 개인의 승리가 아니라, 흔들림 속에서도 지역과 나라를 생각해 주신 주민 여러분의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를 둘러싼 여러 의혹과 논란에 대해서는 피하지 않겠습니다. 선거가 끝났으니 이제 차분히, 그리고 책임 있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카메라 뒤쪽에서 노민지가 아주 작게 고개를 저었다. 더 말하지 말라는 신호였다. 그러나 장천길은 보았다가 못 본 척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저는 누군가의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산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제 이름으로 만들어 놓은 과거가 있다면, 그 과거를 끝까지 확인하겠습니다.”

기자들 사이에 술렁임이 일었다. 노민지의 얼굴이 굳어졌다. 지명길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 말은 준비된 승리 연설문에 없었다. 송민희는 방송국 모니터 앞에서 그 장면을 보며 등을 곧게 폈다. 장천길은 방금 자신이 의혹을 피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 자신의 이름으로 과거를 만들었다고 공개적으로 암시한 것이다.

권유라는 즉시 반응했다.

“지금 발언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장천길 당선자가 자신을 둘러싼 의혹을 단순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어떤 조작의 피해자라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들립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정치권 전체가 이 문제를 더 깊게 들여다봐야 할 것 같습니다.”

민희는 그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권유라는 또다시 칼을 만들고 있었다. 장천길이 던진 문장은 방어였지만, 권유라의 손을 거치면 또 다른 의혹이 될 수 있었다.

개표가 끝났을 때 장천길은 1,043표 차로 이겼다. 지역구 전체 유권자 수를 생각하면 얇은 차이였다. 그러나 선거에서 1표 차도 승리이고, 만 표 차도 승리였다. 법적으로 장천길은 당선자였다. 정치적으로는 아직 아니었다. 그는 살아남았지만, 누구도 그를 온전한 승자로 부르지 않았다.

새벽 두 시가 조금 넘었을 때, 장천길은 사무소 뒤편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축하 인사를 하러 온 지역 원로들과 당직자들을 잠시 피하기 위해서였다. 문이 닫히자 바깥의 환호가 멀어졌다. 그는 꽃다발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의자에 앉았다. 손바닥에서 꽃가루 냄새가 났다. 승리의 냄새라기보다 장례식장 근처에서 맡을 법한 냄새였다.

지명길이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의원님.”

“알아. 하지 말았어야 할 말 했지.”

“그 말 때문에 내일부터 더 몰아칠 겁니다.”

“그래도 해야 했어.”

“왜요?”

장천길은 한참 말이 없었다. 그러다 낮게 말했다.

“내가 오늘 살아남은 게 내가 잘해서인지, 누군가 살려 둔 건지 모르겠거든.”

지명길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 말은 승리한 정치인의 입에서 나올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밤의 장천길에게는 가장 정확한 말이었다.

노민지가 뒤이어 들어왔다. 그녀는 문을 닫고 곧장 말했다.

“지금부터는 모든 발언을 통제해야 합니다. 경찰 쪽 움직임이 있습니다.”

“문석표?” 장천길이 물었다.

노민지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후원회 관련 내사 자료가 공식 수사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선거 끝났으니 바로 칠 수 있어요.”

“당선 무효까지 가겠군.”

“상대는 그걸 원할 겁니다. 아니, 정확히는 당선 무효가 아니라 당선 무효 가능성을 원할 겁니다.”

장천길은 피곤한 얼굴로 웃었다. “상처 입은 당선자.”

노민지의 눈동자가 아주 짧게 흔들렸다. 지명길은 그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그 표현을 어디서 들으셨습니까?” 노민지가 물었다.

“왜? 너도 아는 말인가?”

노민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방 안의 공기가 다시 굳었다. 바로 그때, 장천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발신번호 표시 제한이었다. 지명길이 먼저 움직이려 했지만 장천길이 손을 들어 막았다. 그는 직접 전화를 받았다.

“장천길입니다.”

수화기 너머에서는 한동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아주 낮고 쉰 남자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축하한다.”

장천길의 얼굴에서 피가 빠졌다. 지명길과 노민지는 동시에 그를 바라보았다.

“누구십니까?”

“너는 아직도 목소리를 못 알아듣는군.”

장천길은 의자 팔걸이를 움켜쥐었다.

“강윤호입니까?”

수화기 너머 남자는 웃지 않았다. 숨소리만 잠깐 들렸다.

“살아남았으면 이제 빚을 갚아야지.”

전화는 끊겼다.



장천길은 한동안 휴대전화를 귀에서 떼지 못했다. 지명길이 다가와 “의원님” 하고 불렀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노민지는 창백해진 얼굴로 전화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방금 전까지 어떤 상황에서도 계산을 놓치지 않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순간만큼은 계산을 잃은 사람 같았다.

바깥에서는 여전히 환호가 들렸다. 사람들은 장천길의 이름을 외쳤고, 카메라는 승리한 후보의 사무소를 비추고 있었다. 꽃다발은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고, 축하 케이크의 촛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그러나 작은 방 안의 세 사람은 모두 알고 있었다. 방금 시작된 것은 승리의 다음 장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래전에 끝났어야 할 밤이 다시 돌아온 소리였다.
그 시각, 국정원 지하 연락분석실의 이철규 모니터에도 새 알림이 떠올랐다.


UNKNOWN CALL ROUTE DETECTED.

TARGET: J.C.G.

KEYWORD MATCH: KANG YUN-HO.


그 아래, 누군가가 수동으로 입력한 듯한 짧은 문장이 덧붙어 있었다.


White Night congratulates the wounded survivor.


이철규는 화면을 바라보며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컵 바닥이 책상에 닿는 소리가 지나치게 크게 들렸다.
차휘가 물었다.

“또 백야입니까?”

이철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그럼 뭡니까?”

“백야가 아니라…”

그는 문장 끝을 잠시 삼켰다. 그리고 모니터에 떠 있는 장천길의 당선 확정 자막을 바라보며 말했다.

“누군가 백야를 다시 시작하고 있어.”



-계속-